211117 - 회사 밖 회사 사람

2021. 11. 17. 23:57일상기록

'회사 사람'이라는 지칭을 가끔 멸칭으로 쓴다.
와, 완전히 회사 사람이네,
회사 사람이 그렇지 뭐, 하는 식의.
물론 우리 회사 안에서만.

머리로는 알겠지만 가슴으로는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있다. 친구들이랑 얘기하다 보면, 친구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 얘기하다 보면 내가 유독 가면을 견디지 못하는 축에 속한다는 것을 느낀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속마음과 다른 언행.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머리로는 안다.

파트 사건 이후 인간 대 인간, 인간 대 인간, 인간 대 인간이었던 마음들을 완전히 끊은 뒤로 회사에서의 나는 별로 내가 아니기 때문에 예전처럼 막 사람들이랑 다 얘기하고 다니지 않는데, 내가 먼저 친근하게 굴지 않는 와중에도 먼저 얘기도 많이 걸고 밥도 사주러 데리고 나가는 선배들, 동기들이 몇 있다. 아주 조금. 그들의 공통점은 회사 밖에도 삶이 많아 보인다는 것이다.

사람 결이라는 게 있나, 바이브가 느껴지나, 내가 본격적으로 마음을 정한 뒤로는 회사에 별로 뜻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가진다. 음악 동호회 한다던 건 계속 하냐, 카톡 프사에 있던 공연 사진은 어디서 한 거냐, 요샌 뭐 재밌는 거 없냐 등등. 신입 시절에 신나서 송년회 기획하고 캐롤 부르고 마이크 탐내고 까불던 까마득한 옛날의 나로 아직도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고.

생각해 보니 살면서 이런 말을 몇 번 들었다. 너만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 항상 응원하고 도울 일 있으면 도와 줄게. 진짜 너만은... 주변에 있는 나 같은 부류의 사람 몇몇이 그랬다. 그랬네...갑자기 생각해 보니 그렇네.

오늘 저녁을 사 주신 선배는 회사에도 뜻이 많고 회사 바깥에도 알고 보니 뜻이 많았던 부류다. 여기서 올라갈 수 있는 만큼 다 올라가기도 했고 인정도 받는 인력인데, 한번 세게 힘든 일이 있어서 마음을 달리 먹었는지 아니면 원래 가지고 있던 성향인데 표출할 환경이 못 됐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학생 때 꿈꿨던 예술 분야를 취미로 도전해 보려 한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옆옆 팀에도 이렇게 뒤늦은 꿈 찾아 가려는 사람 또 있는데 그 선배도 나 불러서 밥 사주시고 사이버대인가 야간대로 예대 갈 계획 얘기하시고 그랬었네. 나 무슨 회사 내 예술가 지망생들 자석인가...

아무튼 이 선배랑 또 내 동기 한 명이랑 또 다른 분이랑 두어 번 저녁 먹었던 팟이 있는데 이렇게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종종 퇴근하고 저녁도 먹으러 가고 회사 얘기 말고 좋아하는 것 얘기 나누면서 지내자고 하셨다. 나야 뭐 천성이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는 축인데, 솔직히 말하면 마냥 좋기만 하겠다 싶진 않았다. 내 안에 '그래 봤자 회사 사람'이라는 생각이 있는 건지, 아니면 내가 지금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건지, 근본적인 현재의 불안이 회사에 있는데 그게 해결이 안 되면 회사 사람과 다른 즐거운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제 그게 생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걸.

하지만 생각해 보니 두어 달에 한 번씩 밥 먹는 게 뭐 대수라고 너무 깊이 생각하네 싶어서 그냥 눈 앞에 있는 양갈비를 맛있게 먹고 집까지 노래 부르면서 즐겁게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