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12 - 연애에 관한 단상 (1)

2021. 9. 13. 02:44일상기록

거의 10일가량 일기를 쓰지 않았다는 것에 경악하며



🐸🐘극중 캐릭터 관계 논쟁으로 갑자기 시작된 생각 정리.

어렸을 때부터 노래든 드라마든 온통 사랑얘기 범벅인 것에 불만이 많았다. 여남이 좀 친하다 싶으면 여남로맨스관계로 몰아가는 게 너무나 지겨웠고 사람들에게도 매번 그러지 말라고 하며 기분 나쁘다고 표현했다. 실제로 주변 누군가 여남이 몰래(지만 티가 났나 봄) 사귀어도 그걸 혼자 못 알아채고 "그냥 친한 거 아니었어?" 하던 사람이었다. 날 좋아한다는 사람도 맨날 나만 몰랐음. 분명하게 말로 하기 전까진.

아무튼 이렇게 성애렌즈가 없었을뿐더러, 내 연애에서도 연애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일상생활에 피해될 만한 드라마틱한 일도 없었고(물론 👂들이라 구린 에피소드는 많긴 하지만 그럴 경우 금방 끝내고 미련 가지지 않음), 그냥 사귈 거면 재밌게 잘 사귀고 말면 마는 거지 뭐 정도. 하지만 그렇다고 거시적으로 👂들이 연인 관계의 여자들에게 입히는 피해가 얼마나 큰지 모르는 게 아니며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도, 뉴스를 통해서도 매일같이 접했기에 그런 여성들을 구하고 싶었다. 동시에 세상에 만연한 이성애커플 도식에 +1하는 것이 싫고 '나만 남자친구 없어'라며 연애시장으로 걸어들어갈 잠재적 피해여성들을 만들기 싫었다. 그래선지 많은 연애를 하는 와중에도 "남자친구"가 없는 사람 앞에서는 연애사실을 밝히는 것이 꺼려졌다. 이후 여자들에게 퍼진 '비연애'실천 운동(4B)이 크게 반가웠고 내가 왜 연애 사실을 공개하기 싫어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그때 비로소 알았다.

나는 원체 독립적인 성향이고 너무 아니다 싶을 경우 잘 끊어내는 편이라 '연애를 한다는 것' 자체가 한 사람의 생을 부정적으로 이끈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껏 연애가 해롭다고 판단한 건 상대를 남자로 상정했기 때문이고, 거기에서 '남자'를 걷어내고 '연애'만 남기고 보면 내겐 해로움이 (아마도 거의)다 걷어진 것이다. 그래서 '비연애'가 여성까지를 대상으로 한다는 입장이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을 계속하다 보니 모든 여성들이 나와 같은 백그라운드를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가 확립되고 삶의 방식에 공식적으로 참견할 사람들이 줄어든 나이대와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 경우, 여전히 사회의 정상성=남자친구 있음에 영향을 훨씬 많이 받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연애라는 요소 자체를 삶에서 뿌리째 뽑아내는 게 덜 고통받는 길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너무 졸려서 내일이든 모레든 삘받으면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