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일기 - 210811 - 백신 접종, 사내벤처 사무실 구경, 한낮의 행복

2021. 8. 13. 22:47카테고리 없음

친구 집에서 자고 일어나서 남은 짐을 마저 챙기고, 친구가 차로 집에 태워다 줘서 짐을 놓고 같이 회사로 향했다. 차에서 악뮤 이번 앨범을 처음 들었다. 길이 생각보다 막혀서 친구가 지각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제 시간에 도착했다. 나는 백신 맞고 나서 사무실에 놀러가기로 하고 병원으로 갔다.

문진표 작성하고 올라가서 번호표 뽑고 사전진단(?) 하고 접종을 하기까지 생각보다 빨리 진행됐다. 접종 후 이상증상이 있는지 30분간 대기하는 동안 침실 벽등을 골랐다. 며칠 전에 구름 펜던트조명이 왔고 이제 침실 벽등과 바룸 펜던트조명만 사면 조명은 끝이다.

친구네 사내벤처 사무실에 놀러 가서 오랜만에 못 보던 얼굴들도 보고, 팀원들이 회의하는 동안 비치된 과자를 까먹으며 다른 동호회 미션도 하고 놀러온 또다른 친구랑도 오랜만에 수다를 떨었다. 지금 집을 팔고 좀더 큰 집으로 이사가려고 알아보고 있다고 해서 우리 동네로 오라고 꼬셨다. 회의가 끝나고 다같이 점심을 먹었다. 이렇게 여럿이서 점심을 먹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비록 마주보는 자리마다 칸막이가 있어 대화를 다같이 한 건 아니지만 오랜만에 다수와의 점심이었다.

커피도 한 잔씩 얻어먹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서 잠깐 노닥거리다가 제주도 가고 싶다는 얘기를 했더니 추진력 왕인 친구 하나가 날짜를 박았고 제주도팟이 급 결성되었다. 이것도 거리두기 단계 상황 봐서 최종 확정되겠지만 일단은 희망을 가져 보기로 한다. 조금 놀다가 벤처 멤버들은 다시 업무로 돌아가고 나를 포함한 손님들도 각자 흩어졌다.

전날 충전을 안 해 놔서 핸드폰 배터리가 간당간당했고 충전기도 없었다. 아끼던 충전기를 최근에 밖에 놓고 와서 하나 사야 할 상황이긴 했기에 편의점에서 하나를  사서 카페를 갔는데 세상에 케이블 길이가 60cm밖에 안 되는 것이었다. 이걸 누구 코에 붙여. 나를 벽에 붙여야 된다. 심지어 고속충전도 아니고 너무 느렸다. 집에 가기 전에 또 누굴 만나 전해줄 게 있어서 충전은 꼭 해야 했는데, 아쉬운 대로 15%정도 될 때까지만 기다렸다가 가는 길에는 핸드폰을 안 보고 가기로 했다.

걸어서 30분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나는 걷는 걸 너무너무 좋아하고 특히 햇빛 보며 걷는 걸 좋아하니까 당연히 걸어갔다. 낮에 이렇게 여유롭게 걸을 기회가 얼마나 되겠어. 며칠 전부터 적당히 식은 여름의 햇빛 아래, 아무런 의무가 없는 평일 낮의 산책이라니. 너무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이 행복에 더불어 또 하나 즐거운 점은, 부동산에 관심 가지고부터 길을 걷는 것이 모두 임장이 된다는 점이었다. 이 동네는 이 아파트가 있네? 여긴 동간 거리가 이렇네? 학교랑 상권은 이 정도로 있고 가격은 이 정도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걸으니까 원래도 즐거운 산책이 두 배로 재밌어진다.

전해 줄 물건을 전해 주고 이모님께서 재배하셨다는 탐스러운 포도 한 송이를 선물로 받아 룰루랄라 집에 오면서 내내 즐거웠다. 집에 가서도 계속 쉴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다행히 백신 이상증상은 없는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해서 소파에 누워 우정리 지난 주 다시보기를 보면서 지난 번에 놀러온 고등학교 때 친구가 선물로 준 예쁜 고블렛잔에 오렌지주스를 따라 마셨다. 모든 것이 완벽한 휴식이었다. 평일인데 일 안 함, 내일도 출근 안 함, 거실로 들어와 타일 바닥에 반사되는 하얀 햇빛, 푹신한 소파,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준 선물들, 우정리노트까지.

백신 후유증 중 졸린 것도 있는지, 어제 늦게 자서 그런 건지 일찍부터 졸렸다. 밤 10시에 미사연 회의가 있었는데 20%쯤 졸면서 말한 것 같다. 회의가 끝남과 동시에 잤다. 행복함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