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17 - 인수인계, W씨, 피아노 레슨
파트변경에 대해 정식 공지가 됐다.
오전에 갑자기 파트장이 회의실로 부르더니 내가 업무 옮기고 싶어서 옮기는 게 맞냐고 물어보는데 왜지? 당연한 거 아닌가. 설마 나는 옮기기 싫어하는데 어쩔 수 없는 통보로 옮기게 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통보가 먼저 왔을 순 있어도 내가 옮기기 싫어할 리가 없잖아. 하여튼 회사 사람들은 아닌 척 의도를 숨기고 유도 질문하는 선수들이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아무튼 얘기하고 나서 옮길 파트의 파트장님을 불러서 이후 인수인계 일정에 대해 협의하고, 파트장이 가고 나서 내 예비 사수분을 불러서 또 셋이 인사하고 앞으로 업무에 대해 간단히 얘기했다.
어제 저녁에 칵테일도 센 걸로 두 잔이나 마시고 떡볶이랑 버터바까지 먹어서 점심때까지 계속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몸이 붓고 무거운 느낌도 들어서 아침엔 전자렌지에 데운 우유에 네스프레소를 내린 카페라떼 한 잔 마시고 점심때는 산책 좀 크게 하고 와서 아침에 받은 요거트 정도 먹었는데 배가 하나도 안 고팠다. 오늘 주간업무에 증감까진 업데이트하려고 했는데 결국 시간이 촉박해서 그건 안 됐고, 내가 들어가는 것도 이상해서 혹시 같이 얘기해야 되는 게 있으면 들어가고 아니면 말려고 물어봤더니 내 맘대로 하래서 그냥 안 들어가고 인계자료를 마저 작성했다.
은근히 할 일이 자잘하게 많았다. 이전에 업무 변경할 때는 내 자리로 오시는 분이 이전에 그 일을 했던 분이어서 그 시점 진행상황 말고는 딱히 알려드릴 게 없었는데 신입사원에게 업무인계를 하려니 작성할 것도 많고, 업무 특성상으로도 여기저기 걸려 있는 게 많아 손이 많이 갔다. 국내/해외 담당자들에게도 내 업무 담당자 변경을 알리는 메일을 보냈다. 보내면서 좀 수신처가 많은가 싶기도 했지만 그냥 스케일 크게 보내 버림.. 그러고서 다시 인계자료 정리를 하고 있는데 법인 사람들한테 메신저가 하나둘씩 와서 어디로 가냐고, 아예 그만두는 건 아니지? 이러면서 그 동안 고마웠다고 따로 인사를 해 주는 것이었다. 특히 W님, 자기가 어떤 긴급 요청을 하거나 뜻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해도 인내심 있고 차분하게 잘 해결해 줘서 고맙다고 다른 업무로 옮겨서도 멋지게 할 거라고 얘기해 주는데... 순간 울컥하면서 그 동안 일한 시간들이 스쳐갔다. 여기 사무실에는 내 법인 업무에 대해 정반대의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잘한 건 그들 눈에 애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잘못을 증폭해서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없는 잘못까지 만들어서 기억하는데 뭐. 그런 사람들과 4년을 지내면서 나를 잃지 않으려 갖은 노력을 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작년 10월 검사 결과를 보고 (이 상태로)대체 그동안 어떻게 회사를 다녔냐고 하시더라. "그러게요ㅎㅎ"밖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W님이 그런 얘기를 해 주니까 너무 고마웠다. 요새 싱가폴에서도 그렇고 사람들이 너무 많이 그만둬서 나도 그만두는 건 줄 알고 걱정했다고 한다. 싱가폴 법인 인원이 200명 정도 되는데 요새 일 주일에 한 명씩은 계속 그만둔다고... 왜냐고 물으니 전국적인 경향이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 한국 회사(라고는 안하고 우리 회사 이름을 말하긴 했지만) 문화에 사람들이 적응을 못 해서 신규 직원들이 오래 못 버티고 그만둔다고 했다. 뭘 말하는 지 알 것 같다고... 사실 나도 그렇다고. 하지만 어쨌든 지금 여기 소속된 사람으로서 feel sorry하다고는 했더니 자기는 너무 오래 돼서 이제 무슨 생각이 들고 말고도 없단다.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을 14년째 하고 있다고ㅎㅎㅎ갑자기 진하게 느껴지는 동질감. 동시에 그가 좀 궁금해지기도 했다. 다른 꿈이 있는데 14년째 회사를 다니는 걸까? 아이의 엄마일까? 그만두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처지는 비슷한 것 같은데, 그래도 그가 퇴근 후에나마 자기 자신으로 살며 꿈을 놓지 않을 수 있게 응원하고 싶어졌다. 그는 나보고 아직 어리고 기회도 많다고 했지만, 그도 역시 그렇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We" are young이라고 답장했다. 이런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