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일기 - 210823 - 급 연차와 알찬 쉼
새벽까지 작업을 하다가 6시가 다 돼서 잤다. 분명 한 시간만 자고 일어나려고 했는데 눈을 뜨니 8시...
반차를 이대로 날리느니 그냥 연차를 쓰는 게 나아서 회사에 연락을 했다. 마침 특별히 큰 일이 없는 날이기도 했다. 물론 우리 부서는 이런 당일연차의 경우 눈치를 많이 주긴 하는데, 그럴 거면 자출제를 공평하게 적용해서 8시 반에도 출근하게 하면 해결되는 것을 왜 굳이 선택적 8-5제를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날도 흐리고 피곤하기도 해서 조금 더 자고 일어나서 거품목욕을 했다. 이 집에서 욕조를 처음 쓰는 순간이었다. 그새 물때가 좀 껴서 스펀지로 몇 번이나 닦아내고 나서 물을 채웠다. 칵테일도 하나 만들었다. 엊그제 포비피엠에서 마신 신메뉴 중 하나가 떠올라 비슷한 맛으로 만들어 봤다. 칵테일 한 잔과 아이패드를 들고 욕조에 들어가서 거품목욕을 하며 유튜브를 봤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서 공기는 시원하게 만들고,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세체니 온천을 재현해 보기로 했다. 근데 사실 목욕하면서 술 마시는 거 위험한 일인데 누가 섣불리 따라하진 않겠지..? 급격한 혈관 팽창으로 인한 뇌출혈 위험, 미끄러질 위험, 잔이 깨져 다칠 위험, 아이패드가 물에 빠질 위험 등등이 도사리고 있다. 쓰고 보니 다신 안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목욕도 실컷 했겠다 나른하게 오후 시간을 즐기고 있었는데 보니까 비도 부슬부슬 오길래 창문을 조금 열고 빗소리를 들었다. 핸드폰을 좀 뒤적거리다가 악동뮤지션의 <낙하> 가사를 테마로 양잠시 일러스트를 그린 작품을 우연히 봤는데 와... 너무 눈물나는 연출이었다. 원작 스토리 자체가 가진 벅참과 감동, 미안함과 서글픔의 복잡한 감정이 <낙하> 가사를 만나니 몇 배로 증폭되었다. <낙하>는 그전까지 가사 하나하나 뜯고 곱씹으며 자세히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꽂혀서 몇 번이나 듣고, 뮤직비디오도 보고 라이브 클립도 보고 뮤직비디오 해석 영상도 봤다. 그리고 <낙하>에서 영감을 받아 칵테일도 하나 창작했다. 헨드릭스 미드서머 솔스티스 1온스, 아드벡 우가달 1/3온스, 체리 리큐르 1온스를 넣고 좀 세다 싶어서 토닉워터를 채웠다. 맛은 내가 의도한 대로 달콤함+쌉싸름한 피트향 속에서 은은한 꽃향을 찾을 수 있는 맛이었는데 비주얼이 좀더 낙하(비상)을 나타낼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제대로 된 밥을 안 먹고 과일이랑 빵쪼가리만 조금 먹었어서 단백질을 좀 섭취하고 싶었다. 생각해 보니 토요일부터 단백질을 거의 먹지 못한 것 같았다. 못한 건지 않은 건지. 아무튼 저녁 산책을 하러 나갔다가 오랜만에 치킨이 먹고 싶어져서 난생 처음으로 '혼자 있을 때' 치킨을 시켜 봤다. 기프티콘 선물함에서 하나를 찾아서 주문했고, 기프티콘으로 굽네치킨 주문을 하려면 어플을 깔아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치킨 박스를 딱 열었는데 기분 탓인지 양이 어마무시하게 많아 보여서 먹기도 전에 순간 질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것치곤 많이 먹긴 했지만. 반주를 곁들일까 했는데 오늘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아 물을 곁들여 먹었다. 간만에 유튜브도 많이 보고 아주 푹 쉰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