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

이사일기 - 210724 - 이삿날

A for Arden 2021. 7. 24. 23:58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 블로그를 개설하고 동지글방과 하지글방을 함께하며 백여 개의 글을 써 오며 바라보던 날이 오늘이다.

바로 어제 쓴 글에서도 여기가 내 집이라는 것이 아직 실감이 안 난다고 했었다. 그러니까 여기가 내가 실제로 거주하며 일상을 함께할 터전, "집에 가고 싶다"할 때의 그 '집'이라는 사실이 와닿지 않았고 내 집이라는 건 그냥 텍스트로만, 혹은 추상적인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매일같이 와서 땀흘리며 일하긴 했지만 그냥 그 정도?

아침에 전화를 받고 집(현장)에 와 보니 이삿짐이 구역별로 한창 들어오고 있었다. 가구 위치를 지정해 주고 자잘한 가재도구들을 챙기느라 나도 바쁘게 움직였다. 그래도 보관 맡기기 전 포장하셨던 팀이 그대로 오시는 거라 얼추 이전과 비슷하게 배치가 되었다. 주방 수납장이 줄어들고 냉장고도 아직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싱크대 위에 놓인 잡동사니들이 많긴 했다. 이래저래 세 시간쯤 걸렸나? 대략적으로 짐 정리가 완료되고 바닥도 다 닦아 주셨다. 하나 둘씩 직원분들이 빠지고 마지막으로 팀장님이 잔금 안내를 해 주시고 퇴장하셨다.

작업자들이 북적북적할 때까지만 해도 그냥 익숙한 장면이었는데, 사람이 다 빠지고 문을 닫고 혼자 남으니 내가 쓰던 가구들이 고스란히 배치된 집이 눈에 들어왔다. 집이다. 내가 살던 집. 내가 살 집. 침대에서보다 자주 자던 소파에 앉아 봤다. 갑자기 코가 시큰했다. 물리적으로 콘크리트와 건축재의 집합체인 "집"과, 내 손때와 기억이 묻어 삶을 함께하는 "집"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같았다.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그동안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클리셰적이지만 진짜 그랬다. 주변 친구 선배들이 다 하나씩 청약이 당첨되는 걸 보며 '나만 없어 집' 하면서 오르는 집값에 불안에 떨던 기억, 열심히 임장을 다니던 기억, 계약서를 쓰기 전에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고 부동산 유튜브를 하루종일 달고 살던 기억, 대출 때문에 마음 졸이고 또 불안에 떨던 기억, 점심 시간마다 점심은 못 먹고 은행에 백만 번 왔다갔다하던 때, 잔금과 인테리어...(갑자기 축약하고 있다)

감상에 젖어 잠깐 눈물을 훔치며 소파에 좀 누워 있었다. 이 소파도 두 달만이네. 친한 선배가 줬던 건데, 마침 그 선배한테 어제 밤에 전화가 와서 오랜만에 근황을 나눴다. 친한 또다른 선배랑 술 마시다가 전화했다고 했다. 어떻게든 나를 그렇게 떠올려 전화 한 번 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참 고마웠다. 그리고 몰랐는데 소파 주기 전에 5만원 들여 세탁도 맡겼다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고작 초밥 사 드렸는데...히히